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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디스크 조각 모음 #4 무의미한 잉크의 주장

by 차혜지씨 2024. 11. 13.

글씨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2022년, 보이는 시들은 이현호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에 수록된 시들

 

 

네모 반듯하고 인쇄한듯한 다꾸용 글씨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살아온 삶

 

국어 익힘 책 뒤의 직사각형, 마름모, 무게 중심에 맞춰 칸 안에 쓰는 연습도

몇 달 쓰지 못하더라도 다이어리는 예쁘게

스터디 플래너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칠판에 뭔갈 적을 때도 괜히 시간을 들여서

그냥 거기에 시간을 들이는 나도

글씨를 보면 시간에 보답받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사실 다이어리도 인스타그램도 잘 쓰지 않아 어디 보여줄 곳은 없었는데

공부 못하는 애 특 그 자체의 필기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대학교 들어와서 깨닫고

막상 내 글씨를 더 많이 보여줄 기회가 많은 시간이 되니까

손목에도 힘이 많이 들고

어차피 글씨 더 이쁘게 쓴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 핑계고 그냥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글씨는 이제 언젠가 본 부모님 연락처 노트에 있던 글자들과 닮아있다

글씨의 흔적은 노트에도 펜에도 없고 

언젠가 어른이 너 굳은 살 손에 그렇게 박히면 안 예뻐보인다는 말에 놀랐던 시절

계속 떼어내는 습관만 들고 딱히 나도 신경쓰지도 않는 굳은 살에만 남아있다.